현대자동차 하면 다들 포니를 떠올리실텐데... ㅋ
코티나도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모델입니다. 다만 미국의 포드사와 손을 잡고 만들어서
국산차라기 보다는 그냥 조립품정도로 치부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래도 신진자동차의 코로나와 함께 국내 중형차 시장을 이끌었던 모델이며 코로나의
단종을 계기로 해서 더욱 장악력을 높인 녀석이죠
코로나는 1598cc의 4기통엔진을 장착했으며 1983년 스텔라가 나오기까지 승승장구하며
우리나라 자동차의 가능성을 보여준 모델입니다.
2011년 8월 7일 일요일
신진 코로나 자동차
1966년 신진자동차에서 생산한 모델이며 일본의 도요타와의 기술제휴를 통해서 만들어진
자동차 입니다.
배리량은 1490cc 이며 4기통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다양한 편의장치를 적용하였는데
라디오, 히터등을 장착하고 미등과 와이퍼도 조정이 가능했습니다.
코로나는 그 당시의 도로사정에 맞는 자동차로 평가받아 택시로도 인기가 있었으며
이후 1972년 단종될때까지 국내 자동차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 자동차 입니다.
자동차 입니다.
배리량은 1490cc 이며 4기통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다양한 편의장치를 적용하였는데
라디오, 히터등을 장착하고 미등과 와이퍼도 조정이 가능했습니다.
코로나는 그 당시의 도로사정에 맞는 자동차로 평가받아 택시로도 인기가 있었으며
이후 1972년 단종될때까지 국내 자동차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 자동차 입니다.
퍼블리카
1970년대 대우자동차의 전신이었던 신진자동차가 생산한 모델로서 그전에는
자동차의 개념이 부자들만의 전유물이었던 반면 퍼블리카는 소형차라는 개념으로
생산된 자동차이다
퍼블리카는 2기통 800cc엔진을 사용하여 약 49마력을 낼 수 있었으며 앞서 말했다시피
일반인들의 마이카 붐을 일으킨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의 개념이 부자들만의 전유물이었던 반면 퍼블리카는 소형차라는 개념으로
생산된 자동차이다
퍼블리카는 2기통 800cc엔진을 사용하여 약 49마력을 낼 수 있었으며 앞서 말했다시피
일반인들의 마이카 붐을 일으킨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시발자동차를 아시나요?
시발자동차는 국산자동차라는 타이틀을 최초로 가진 자동차 입니다. (물론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요...)
시발자동차의 제작사는 국제차량 주식회사로서 광복후에 미군이 사용하던 차량을 재생하여
재활용한 국제 공업사라는 회사를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이때 익힌 기술로 차대제작에 성공을 하게 되고 이후 공업사에서 차량주식회사로 변경합니다.
국제차량 주식회사는 1955년에 시발 이라는 브랜드의 자동차를 만들게 되고 이 자동차를
산업박람회에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받게 됩니다. 이후에 택시를 비롯해서 세단, 트럭, 버스
등을 제작하게 되는 데 이때 자동차수를 제한하는 긴급조치가 발동되며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시발자동차는 미군이 사용하던 차량을 재생해서 생산했기 때문에 진정한 국산 자동차가
아니라는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현실과 비교했을때 그정도의 결과물을
내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국제차량주식회사의 업적은 무시할 수 없는것이 사실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오리지널 모델은 없으며 복각차량만이 박물관 2곳에 보관중이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시발자동차의 제작사는 국제차량 주식회사로서 광복후에 미군이 사용하던 차량을 재생하여
재활용한 국제 공업사라는 회사를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이때 익힌 기술로 차대제작에 성공을 하게 되고 이후 공업사에서 차량주식회사로 변경합니다.
국제차량 주식회사는 1955년에 시발 이라는 브랜드의 자동차를 만들게 되고 이 자동차를
산업박람회에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받게 됩니다. 이후에 택시를 비롯해서 세단, 트럭, 버스
등을 제작하게 되는 데 이때 자동차수를 제한하는 긴급조치가 발동되며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시발자동차는 미군이 사용하던 차량을 재생해서 생산했기 때문에 진정한 국산 자동차가
아니라는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현실과 비교했을때 그정도의 결과물을
내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국제차량주식회사의 업적은 무시할 수 없는것이 사실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오리지널 모델은 없으며 복각차량만이 박물관 2곳에 보관중이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최초의 교통사고
최초의 교통사고는 18세기 초 프랑스의 공병장교인 니콜라 조제프 퀴뇨가 만든
증기자동차에 의해 발생했다.
퀴뇨는 2기통 3륜의 증기기관을 탑재한 자동차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시연했으나
당시 퀴뇨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브레이크'이다
퀴뇨의 자동차는 시연회에서 1시간동안이나 달렸으나 브레이크가 없던 관계로
파리 외곽의 언덕길에서 멈추지 않고 돌진하게 된다.
결국에는 벽에 부딪치면서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교통사고가 발생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당연히 보험을 안 들었을텐데.... 보상은 어떻게 했을려나? ㅋㅋ
증기자동차에 의해 발생했다.
퀴뇨는 2기통 3륜의 증기기관을 탑재한 자동차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시연했으나
당시 퀴뇨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브레이크'이다
퀴뇨의 자동차는 시연회에서 1시간동안이나 달렸으나 브레이크가 없던 관계로
파리 외곽의 언덕길에서 멈추지 않고 돌진하게 된다.
결국에는 벽에 부딪치면서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교통사고가 발생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당연히 보험을 안 들었을텐데.... 보상은 어떻게 했을려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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